[명화]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폴 고갱)
프랑스 혁명 이후 공학파 신문 <나쇼날>의 주필로 일하던 고갱이 아버지는 정세가 불리해지자 가족을 이끌고 남미로 망명을 결심, 페루로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배 안에서 사망 하는 바람에 가족 모두 혹독한 타지생활을 하다가 5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오게 됩니다. 고갱은 파리 주식중개소에서 일하다가 덴마크 출신의 아내와 결혼했고 다섯 명의 아이를 나으며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34세가 되던 해 취미로 배우던 그림을 직업으로 삼기로 결정 합니다. 이후 그는 무책임하다 싶을 정도로 가정을 내팽겨쳤습니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있는 고국으로 떠났고 고갱은 퐁타벤에서 동료들과 예술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폴 고갱(Paul Gauguin)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the Yellow Christ, 1890-1891)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자화상이 아니라, 고갱의 예술관과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그림입니다.
자화상 속의 두 개의 얼굴
이 그림을 보면 고갱의 얼굴이 약간 비대칭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왼쪽 얼굴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오른쪽은 밝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자신의 내면 속 갈등과 고독, 종교적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황색 그리스도’와의 관계
배경에는 고갱이 그린 또 다른 작품인 <황색 그리스도〉(The Yellow Christ, 1889)가 걸려 있습니다. 여기서 황색의 예수는 고갱 자신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당시 고갱은 자신을 시대에 맞지 않는 순교자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대중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사회로부터 고립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희생하는 예수와 동일시하며, 배경에 그 그림을 넣었다고 합니다.
반 고흐와의 관계가 반영된 그림
고갱은 반 고흐와 아를에서 공동 작업을 하다가 심하게 다투고 결별하였습니다. 이 시기 이후 그는 더욱 영적인 예술을 추구하게 됩니다.
-고갱은 반 고흐의 정신적 불안정함을 보고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1888년) 이후, 고갱도 자신의 예술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이러한 상징적인 자화상을 그린 것입니다.

종교적 의미와 색채 실험
-그림 속 강렬한 노란색과 붉은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정신적·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노란색은 성스러움과 희생, 붉은색은 열정과 고통을 나타낸다고 해석됩니다.
-이는 후기 인상주의적 색채 실험이기도 하며, 고갱이 찾고자 했던 영적인 세계를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예술 순교자’로 본 고갱
이 그림은 단순한 자화상이 아니라 나는 예술을 위해 희생하는 순교자라는 고갱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오해받고 소외된 예술가로 여기며, 예수를 닮은 이미지로 스스로를 표현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문명을 떠나 타히티로 가서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처럼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은 고갱의 예술관, 내면의 고통, 종교적 고민이 담긴 작품입니다.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그의 예술적 신념과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