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만담

[명화]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폴 고갱)

잡학만담 2025. 3. 7. 16:25

프랑스 혁명 이후 공학파 신문 <나쇼날>의 주필로 일하던 고갱이 아버지는 정세가 불리해지자 가족을 이끌고 남미로 망명을 결심, 페루로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배 안에서 사망 하는 바람에 가족 모두 혹독한 타지생활을 하다가 5년 만에 프랑스로 돌아오게 됩니다. 고갱은 파리 주식중개소에서 일하다가 덴마크 출신의 아내와 결혼했고 다섯 명의 아이를 나으며 평범한 회사원의 삶을 사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34세가 되던 해 취미로 배우던 그림을 직업으로 삼기로 결정 합니다. 이후 그는 무책임하다 싶을 정도로 가정을 내팽겨쳤습니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있는 고국으로 떠났고 고갱은 퐁타벤에서 동료들과 예술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1890-1891, 파리 오르세 미술관


폴 고갱(Paul Gauguin)의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Self-Portrait with the Yellow Christ, 1890-1891)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자화상이 아니라, 고갱의 예술관과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그림입니다.


자화상 속의 두 개의 얼굴

이 그림을 보면 고갱의 얼굴이 약간 비대칭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왼쪽 얼굴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오른쪽은 밝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자신의 내면 속 갈등과 고독, 종교적 고민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황색 그리스도’와의 관계

배경에는 고갱이 그린 또 다른 작품인 <황색 그리스도〉(The Yellow Christ, 1889)가 걸려 있습니다. 여기서 황색의 예수는 고갱 자신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당시 고갱은 자신을 시대에 맞지 않는 순교자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대중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사회로부터 고립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희생하는 예수와 동일시하며, 배경에 그 그림을 넣었다고 합니다.



반 고흐와의 관계가 반영된 그림

고갱은 반 고흐와 아를에서 공동 작업을 하다가 심하게 다투고 결별하였습니다. 이 시기 이후 그는 더욱 영적인 예술을 추구하게 됩니다.
-고갱은 반 고흐의 정신적 불안정함을 보고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1888년) 이후, 고갱도 자신의 예술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이러한 상징적인 자화상을 그린 것입니다.

폴 고갱


종교적 의미와 색채 실험
-그림 속 강렬한 노란색과 붉은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정신적·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노란색은 성스러움과 희생, 붉은색은 열정과 고통을 나타낸다고 해석됩니다.
-이는 후기 인상주의적 색채 실험이기도 하며, 고갱이 찾고자 했던 영적인 세계를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예술 순교자’로 본 고갱

이 그림은 단순한 자화상이 아니라 나는 예술을 위해 희생하는 순교자라는 고갱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오해받고 소외된 예술가로 여기며, 예수를 닮은 이미지로 스스로를 표현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문명을 떠나 타히티로 가서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처럼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은 고갱의 예술관, 내면의 고통, 종교적 고민이 담긴 작품입니다.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그의 예술적 신념과 심리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그림입니다.